블루스록 앨범이다. 요 몇년 사이 블루스와 블루스록은 씬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중 하나다. 다시 말하자면 이젠 더 이상 블루스가 희귀하지 않다는 말이다. 블루스를 한다는 것 만으로 우선 박수치고 보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블루스를 젖동냥하며 커온 나같은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이 트렌드가 조금씩 지겨워질 무렵 나는 빌리카터를 들었다.

우선 거친 기타를 듣고 뻑 갔다. 이 지랄맞은 디스토션 피킹질에 귀가 아릿하면서도 물컹한 원형질(protoplasm) 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블루스록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낸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건 일종의 포스(force)다. 이 포스때문에 빌리카터는 클럽 사장한테 돈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무대 위에 드러눕고 꽐라가 아닌데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고 그러는 거다. 짧은 EP안에 다양한 스타일을 담으면서 장르의 전형과 포스를 적절히 배열한다. 진중하게 밀고나가는 보컬과 멋대로인 기타가 제법 잘 어울리는 「침묵」이 대표적이다. 평범하게 끝나는줄 알았는데 잠깐 쉬었다가 돌변하는 후반부를 들으며 '마치 이런 걸 원했지'라며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도 선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것은 'Time Machine'이다. 이 곡 역시 블루스록의 클리세중에 클리세라고 할 수 있는데 가사의 소울과 블루스의 포스로 그냥 밀고 간다. '평론가들은 모두 엿이나 ㅊ드셔'라고 하는 듯이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아마도 이런 패기가 《음악취향Y》 2015년 신인부문 1위에 오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