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 후 서태지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강한 톤과 스타일을 고수해 왔으나 그 속에 담긴 애티튜드는 쿨하기보단 어딘가 강박적이었다. 완벽한 통제 하에 빽빽히 배치된 사운드는 부품 하나만 빠져도 무너져 버릴 거대건축물처럼 불안했고, 메시지 역시 음반별 마케팅 포인트에 맞춘 초월적 존재로의 화려하지만 공허한 변장(「Take One」(1998)의 외계인, 「울트라맨이야」(2000)의 히어로, 「Live Wire」(2004)의 쿠데타 지도자, 「Moai」(2008)와 「Bermuda(Triangle)」(2008)의 태고적 비밀을 깨우친 구도자 등) 뒤에 숨어 정작 실체는 감춰져 있기 일쑤였다.

그런 점에서 근래의 의도치 않은 개인사 공개기는 서태지에게 독과 동시에 약이 된 것 같다. 더 이상 통제된 이미지 메이킹 속에 숨어 살아야 할 신비의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한참 오는 동안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다"는 「잃어버린」의 소회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덕분에 9집에서 우린 어느 때보다 힘을 빼고 솔직해진 그를 만날 수 있다. 기타 기반의 작곡 틀을 벗어나 신디사이저를 모체로 새로 구성된 사운드의 결은 촘촘하지만 전처럼 빽빽하기보다 아기자기한 느낌이며, 그 안에 담긴 자아 역시 화려한 허울 대신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동화에 빗대 노래하거나(「숲 속의 파이터」), 사뭇 서글프지만 초연하게 과거를 돌아보고(「소격동」, 「90s Icon」), 자신의 팬과 아이에게 따스한 시선을 건네는 등(「비록」, 「성탄절의 기적」) 나긋하고 편안한 감성을 뽐낸다(앨범 중 가장 하드한 「Christmalo.Win」조차 예전의 사회비판적 트랙들이 보여준 날카로움에 비하면 귀엽기 그지없다).

본작의 이러한 특성은 미디어가 붙인 ‘문화대통령’ 따위의 과도한 수식과 이로 인한 콩깍지/색안경에 가려 뚜렷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웠던, 한 사람의 ‘좋은 뮤지션’으로서의 서태지란 인물과 그의 뛰어난 감각을 데뷔 초 이후 실로 오랜만에 청자에게 생생히 전달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지난 시간들을 우리가, 그리고 그가 너무 오래 잊(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온 건 아닐까 싶은 작은 후회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