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hoice

올해의 앨범 4위

렘넌츠오브더폴른 (Remnants Of The Fallen) 『All The Wounded And Broken』
78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20.11
Volume 3
장르 헤비니스
레이블 와치아웃!레코즈
유통사 미러볼뮤직
2020년대의 모던 헤비니스에게 남아 있는 ‘미답의 영역’이 있을까. 모든 장르가 뒤섞이고 시대와 세대마저 뉴트로라는 이름 아래 두서없이 버무려지는 오늘날, 익스트림 메탈은 또 다른 ‘극한’의 영역을 개간할 수 있을까. ‘장르’의 종언과 ‘음반’의 종언이 목도되는 지금, ‘장르 음반’의 지향점은 무엇일 수 있으며, 어떻게 그곳으로 다다를 수 있을까. 정석적인 장르 사운드만으로는 수십 년 동안 쌓인 명반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벅찬 현실에서, 여전히 밴드가 메탈과 코어에 한 발을 둔 채 미지의 땅 (terra Incognita) 에 나머지 한 발을 내디디며 ‘균형’ 잡힌 명반을 만들 수 있을까. (앨범)감상과 (콘서트)체험의 시대가 저물고 로파이(lo-fi) 노동요와 채널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로 건너온 현재의 청자들을 5분 넘게 매혹할 곡의 인상을 어떻게 ‘조제(調劑)’할 수 있을까.

이 중 어떤 질문도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완전히 사그라든 줄 알았던 유행들의 불씨가 작은 수석(燧石)의 부딪힘으로 손쉽게 커다란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서브 장르들이 혼합과 부활과 개척을 댕기는 충돌로써 젊은 고전을 만들곤 한다. 21세기식 새로움이란 이렇듯 처음부터 새로운 무늬를 짜는 태피스트리(tapestry)가 아니라, 개별의 진부한 재료를 개인들의 역사라는 별개의 방식으로 엮는 퀼트(quilt)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새롭지 않고도 새로운 인상을 조제한 새 해답지가 당도했다. 멜로딕데스메탈과 메탈코어라는 본바탕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블랙·프로그레시브·테크니컬데스메탈의 조각보들을 균형있게 맞춰, 손에 익은 솜씨로 기운 ‘장르 음반’이다. 완전한 미지의 땅을 향해 지도 밖으로 나아가려는 야망보다는, 극한과 극한을 개인들의 역사로 덧입혀 새로운 미답의 영역을 개발한 3차원적 방법론이다. 그동안의 2차원적 ‘미답의 영역’은 서브 장르들의 교집합에서 적절한 감산혼색(減算混色)을 만들어 그린 회화라고 한다면, 현재의 3차원적인 ‘미답의 영역’은 서브 장르를 입체적으로 덧대어 색채와 깊이와 질감(texture)으로 장르의 새로운 구성을 표현하는 조형미술로 치환해볼 수 있다. 이제는 두세 가지의 장르에 천착해 정체성을 고정하기보다는, 뼈대가 되는 장르와 특정 시기 및 서브장르들의 요소들을 어떤 형식으로 덧입혀야 곡의 주제를 더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처럼 실험의 지평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여러 장르의 기법과 분위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겹쳐 쓸 것인지가 뮤지션들의 숙제로 던져졌다. 특히나 수많은 극단적인 서브 장르로 분화한 익스트림 메탈에서는 각각의 방향으로 극한에 다다른 서브 장르들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엮을 사운드 디자인과 믹싱·프로듀싱 능력을 갖추는 게 난제다.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다른 영역으로 한 발을 담가야 할 때, 균형 감각을 잃으면 음반 전체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밴드만의 독창성이나 정체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렘넌츠오브더폴른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미답의 영역에 좌표를 설정하고 균형점으로 삼아, 또 다른 극한을 개간한 장르 음반을 조제했다. 더욱 강하게 질주하면서도 곡의 완급을 고려해 부드럽게 분위기 전환을 이루어내는 드럼, 그와 함께 변화의 질감을 만들고 장르의 연결 부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베이스, 새로운 전환과 각기 다른 서브 장르의 기운에 맞춰 리프를 얹는 기타들, 음폭과 강약과 밀도를 곡 전개에 맞춰 조정하고 다른 장르 보컬의 피처링과 합일(合一)의 묘를 이루는 보컬 등, 밴드의 모든 파트가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구성 요소로 명료하게 기능한다.

초반부에서부터 블랙메탈과 테크니컬데스메탈에서 쓰이는 사운드 방법론을 멜로딕데스메탈에 융합한 곡이 연이어 등장하고, 모던 헤비니스의 감성을 실어 나르는 가사와 기타 솔로, 브리지가 악곡의 구조를 떠받치며 촘촘한 구성을 이룬다. 「Hel」과 「Hate And Carrion」처럼 빠른 곡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어김없이 곡 전체를 감싸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Face(s)」와 「Writer Unknown」은 잘 어우러지는 장르 배율과 조합을 통해 음반 전체의 인상을 조성한다. 전자는 리듬의 완급을, 후자는 장르의 완급을 흥미로운 작법으로 보여준다. 현대 문명(「Earth Eaters」)과 전쟁(「Writer Unknown」) 등 현 체제의 문제를 비판하는 모던 헤비니스의 전형을 가져가면서, 파괴된 인간성에 대한 애통과 분노를 표출하고, 이대로는 공멸하고 말리라는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감정적 복합성을 악곡 구조의 복합성과 일체화하려는 부단한 노력 덕분에, 음반은 주제의 다면성과 장르 방법론의 다면성을 융화하며 절묘한 균형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것이 최상의 균형점인가, 또는 현재의 가장 특별하고 특출한 지향점인가를 따지자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도기라는 말로 납작하게 치부하기에는, 하나하나 고심해서 구상한 흔적과 조심스레 자신들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조합을 다듬어 완성한 기보가 엿보인다. 연결점 하나마다 정치(精緻)한 고려가 녹아 있는 이 음반을 어찌 흘려들을 수 있으랴. 명백히 이번 음반은 도약이고 확장이며 성취이다. 또한 앞으로 이들의 목표는 이 음반을 기준점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고 확장하며 성취하는 일이 될 것이다. 평범한 학생은 눈앞의 성과에 천착해 현재의 지평에 고착되기에 십상이지만, 훌륭한 학생은 그 자신의 성과 속에서 또 다른 차원의 목표를 찾아내고 자신의 한계를 거듭해서 넘어서는 법이다. 전작 『Shadow Walk』(2016) 처럼 『All The Wounded And Broken』에서도 또다른 한계를 돌파했기에, 차기작에도 이처럼 결패(決覇) 충만한 음반을 기대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Credit

[Member]
박용빈 : Vocal
김승연 : Guitars
홍승찬 : Guitars
정종호 : Guitars
이승진 : Bass, Vocal
이종연 : Drums

[Staff]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Frozen Ember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2
    Hel (feat. 규호(매드맨스에스프리))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3
    Face(s)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4
    Hate And Carrion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5
    Earth Eaters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6
    Writer Unknown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7
    Deathlike Silence (feat. 정마토)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8
    Disordered (feat. 웨이브(에이틴에이프릴))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9
    Generation Sin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 10
    Future Without
    이승진
    렘넌츠오브더폴른
    렘넌츠오브더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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